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랑스 외인부대 (문단 편집) ==== [[알제리 전쟁]] ==== 우방의 도움으로 2차대전의 승전국에 오른 [[프랑스 제4공화국]]은 시대가 바뀌어 감에도 [[식민지]]에 대한 [[욕심]]을 포기하지 못했다. 그래서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패퇴했고, 알제리에서는 치열한 전쟁의 늪에 빠져있었다. 알제리 [[독립군]]과의 전쟁에서 자행된 각종 [[학살]]과 반인륜적인 범죄는 특히 프랑스 [[공수부대]]와 외인부대를 중심으로 이뤄졌는데 국내의 반전 운동과 해외의 비난 여론으로 프랑스 정부는 코너에 몰리고 있었다. 문제는 알제리는 프랑스 영토라는 [[우파]]의 압력과 [[여론]]도 거셌고 특히 [[보수주의|보수]]적인 프랑스 [[군부]]는 알제리를 포기할 경우 공공연한 군사 [[쿠데타]] 협박까지 일삼고 있던 상황이였다. 이에 따라 프랑스 4공화국은 무너지고 드골이 다시 정치로 복귀하면서 [[프랑스 제5공화국|5공화국]]이 성립되었다. 드골은 우파와 군부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었고 당연히 그들은 드골이 자신들의 뜻에 따라 알제리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거라고 기대했다. [[알제리 전쟁]] 배경과 진행 상황에 대해서는 해당 문서 참조. 그러나 드골은 군부와 극우파의 뜻대로 알제리의 기약없는 늪에 빠져 가망없는 군사작전을 감행할 생각이 없었다. 가뜩이나 알제리 전쟁으로 프랑스 [[경제]]는 피폐해진 상황이였고 어떻게든 알제리에서 빠져나와야 하는 상황이였다. 또한 국내에서 알제리를 둘러싼 [[우파]]와 [[좌파]]의 좌우대립은 국민을 분열시킬 정도로 심각했다. 군의 징집에 엄청난 저항이 일어나고 있었고 알제리 내의 프랑스 군의 학살은 해외의 비난 여론을 형성하고 있었다. [[1961년]]에 드골 정부는 알제리 국민의 투표를 통해 프랑스의 일부로 남아서 똑같은 프랑스 국민으로 남던지 아니면 완전한 독립을 하던지 그 선택을 알제리에 맡기기로 결정했다. 이에 보수적인 군부에서 엄청난 반발이 있었고, 4명의 최고위급 장군들은 드골을 제거할 군사[[반란]]을 계획했다. 프랑스 생시르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최고위급 엘리트 강성파 장군들이 군사반란을 계획하는 도중 위기를 감지한 드골 정부에서 주요 전쟁 지휘관들을 속속 해임하거나, 본국이나 유럽으로 발령을 내서 드골에 충성하는 장군들로 하나 둘 자리를 채웠다. 그 결과 군사반란 당시에는 반란군 측은 퇴역 장군이 되었거나 주요 작전사령관이 아닌 상태였다. 당시 주알제리 프랑스군은 47만 7000명 규모였는데, 이중 최정예 엘리트 부대인 [[공수부대]] 3개 [[연대]]가 포섭이 되어서 (당시 알제리 주둔 프랑스군 2개 공수[[사단]] 중 제1외인공수연대와 14[[샤쇠르]]공수연대, 18샤쇠르공수연대 3개 연대만 포섭)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공수부대의 특성상 [[중화기]]가 없이 경무장을 한 이들 3개 연대의 전투력은 알제리 주둔 프랑스군의 0.6%에 불과한 전력이라 결과는 뻔한 것이었다. 결국 반란 개시 6일만에 반란군은 스스로 항복을 하고, 반란에 가담한 3개 공수연대 장교 114명을 포함한 220명의 장교가 파면되었고, 이후 반란군 색출 작업을 통해 전체 프랑스군 장교의 3%에 해당하는 1,000여명의 장교가 주로 공수부대 장교들을 중심으로 파면되었다.[* 항간에는 "프랑스가 아닌 외인부대 자체에 충성하는 것의 문제점을 드러낸 사건"이라는 식의 추측성 이야기가 일부 떠돌기도 하는데, 이런 추측은 아마 국내 이야기꾼들의 소설로 보인다. 임영훈 저, 외인부대, 우리문학사(1994) 226페이지를 보면 "프랑스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 그들의 복무수칙"이라는 다음 구절에 "그러나, 외인부대원들은 이 충성이 프랑스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외인부대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을지도 모른다"라고 저자의 개인적인 감상도 적어 놓고 있다. 즉, 프랑스에 충성하는게 실제 사실이고, 외인부대에 충성하는건 저자의 주관적 생각일 뿐인데, 일부 독해력이 떨어지는 독자들이 저자의 개인적인 생각을 실제 사실인 것으로 오독하여 이런 소문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군사 반란은 육사 출신 정치 군인 장교들의 반란일 뿐 프랑스 정치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외국 국적의 말단 병사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알제리 군사반란을 주도한 프랑스 육사 출신 장교들은 자신들이 하는일이 프랑스 국가를 위한다는 위험한 망상에 빠져 반란을 일으킨거지 외인부대를 위해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다. 실제 주요한 3개 반란부대 중 외인부대는 단지 1개 부대에 불과하다.] 이 반란사건의 결과 반란에 가담한 [[장교]]들이 이후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처형]]되었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은 주동자들은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실제 집행은 이뤄지지 않았고 대략 평균 징역 15년 정도의 형벌을 받았다. 1968년 [[68혁명]]으로 드골정부가 위기에 처하자 보수파를 결집시킬 정치적 목적으로 모두 사면되어 풀려났다. 참고로 이 군사반란 중 사망자는 반란군 측 외인공수연대의 습격에서 무선송신소를 지키다 사망한 병사 한 명이다. 당시 반란에 가담한 프랑스 정규 육군 공수부대인 녹색베레 제1외인공수연대와 붉은베레로 유명한 르파루아 제14, 18샤쇠르공수연대는 반란사건 후 즉시 부대가 해체되었다. 반란군 측에는 군내 사조직인 비밀육군조직(Organisation armée secrète, OAS) 회원이 많았는데, OAS는 당시 극한으로 치닫던 알제리 전쟁에서 합법적이고 정상적인 군사작전에 환멸을 느낀 장군들이 알제리 독립군에 대한 탈법, 불법적 보복을 위해 결정한 초법적 암살 테러단체로,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테러나 독립운동가나 정치인에 대한 암살 테러, 불법 체포 및 구금, 고문 등을 일삼았는데, 알제리 군사반란을 주도한 장군들이 OAS를 창단한 주도세력들이었다. OAS 가담 장교들은 엘리트 공수부대 출신이 많았기 때문에 반란군이 전부 공수부대였고, 반란이 실패한 후에는 일부가 [[탈영]]하여, 드골 대통령 [[암살]] 등을 시도하다가 구속되는가 하면, 알제리에서 [[테러]]를 일삼다가 사형을 당하는 등 여파가 있었다. 임영훈의 ''외인부대''라는 [[책]]에선 반란 실패 후 외인부대에서 탈영한 [[유고슬라비아]] 출신 OAS 회원이 테러를 일삼다가 [[총살]]당했다고 사진과 같이 그에 대한 정보가 나와 있다. OAS에 가입한 병사들은 독립군과 토벌군 사이에 점점 격해지는 전쟁 양상 속에서 독립군에 대한 보복, 복수심에서 OAS 장교들의 행동대원으로 가입한 경우가 많았다. OAS의 반란 모의와 테러, 드골 대통령 암살 모의는 유명한 팩션 소설 [[자칼의 날]]의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알제리 반란 사건으로 외인부대나 공수부대와 같은 엘리트 지원병 부대의 장교들보다는 징집병 부대 장교들의 충성심이 휠씬 더 크다는 사실이 다시금 확인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